[인터뷰] 남극이 세상의 끝? 뒤집어보면 달리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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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극지연구소장 지낸
극지 연구 분야 대표적인 리더
여성 과학자의 일·가정 양립은 과제
좋아서 하는 일은 벽도 뛰어 넘어
경제 규모 걸맞게 과학·환경 투자를
지구상 유일하게 어느 국가도 영유하지 못한 땅,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은 아직까지도 미지의 세계다. 우리나라가 극지 연구에 뛰어든 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86년이다.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88년 킹 조지섬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해 남극 연구에 기반을 닦았다. 남극조약으로 남극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적 탐사의 자유가 보장되자 남극은 자연스럽게 세계 과학기술 경쟁의 각축장이 됐다. 30년 후인 지금은 얼음을 깨고 항해하는 쇄빙선 아라온호가 남극과 북극을 누비고 남극에는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 북극에는 다산과학기지가 세워지면서 극지 연구 인프라가 마련됐다.
아라온호 건조와 장보고과학기지 부지 선정은 이홍금(61·사진) 극지연구소 연구위원이 극지연구소장 재임 시절 추진한 일이다. 그는 2007년부터 6년간 우리나라 극지 연구의 ‘심장부’인 극지연구소를 이끌었다. 여성이 소장을 맡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하필이면 생소하고 척박한 분야에 도전한 까닭을 물었다. 대단한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의 대답은 조금 섭섭할 정도로 평범했다.
실험실에선 배울 수 없는 것
“특별히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를 꿈꾸거나 미생물에 관심이 많아서 전공을 선택한 것은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는 미대도 가고 싶었고, 시도 좋아했어요. 학부 땐 공기총을 배우기도 했고요.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미생물학도 공부하다보니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생들을 만나면 꼭 하는 말이 있어요. 지금 미래를 정하지 못했다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말라고 해요. 다양한 경험을 해야 자신의 성향을 알 수 있고 좋아하는 일도 찾을 수 있거든요. 그때 직업을 정해도 늦지 않아요.”
이 연구위원은 서울대에서 미생물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특별히 미생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의대나 약대처럼 입학하면서 미래가 정해지는 학과보다는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라는 뜻에서 권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80년 독일로 건너가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 미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보낸 10년은 해양미생물 연구의 파고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장 여행을 통해 실험실에서 느낄 수 없는 학문의 재미를 느꼈다.
“세상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미생물이 좋았어요. 기름도 먹고 살고 돌도 먹고 사는 미생물을 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죠. 유학을 가서는 실험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웠죠. 황산화미생물 분리용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탄광에 들어가 수백 미터 지하에도 내려가고 이탈리아 시칠리섬 위쪽의 리파리 제도의 스트롬볼리 활화산에도 올라가고 뜨거운 온천이 솟아오르는 화산섬 바닷가에도 갔어요. 채집을 위한 여행이었지만 이런 여행을 통해 연구에 더 큰 흥미를 갖도록 해줬어요. 1981년 리파리 제도로 향하는 배위에서 10년 후 한국해양연구원에서 해양미생물 연구를 하고, 20여년 후엔 극지연구소 소장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죠.”
우선순위 정하고 포기는 단번에
박사 학위를 받고 과학자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무렵, 그는 또 다른 수식어를 얻게 됐다. 독일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엄마가 되는 일은 기쁨이자 고민의 연속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안산에 있는 한국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그에게도 일·가정 양립은 걸림돌이 됐다.
“남편 직장은 서울 삼성동이고, 제 직장은 안산이다 보니 사는 곳을 정하는 것부터 고민이었어요. 남편과 저는 다른 것보다 아이 양육에 우선순위를 정하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이 안산에서 출퇴근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죠. 그렇게 연구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아파트에 20년 넘게 살고 있어요. 재테크나 학군 같은 것은 포기한 셈이죠.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한다면 갈등만 커질 뿐이에요. 우선순위를 정해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면 일에도 가정에도 집중할 수 있어요.”
여느 엄마들처럼 어린 아들이 아파 입원했을 때 밤새며 간호한 후 바로 출근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족은 그에게 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지난 2004년 극지연구소가 한국해양연구원에서 부설 연구소로 될 때 직장을 극지연구소로 옮기는 것에 대해 가족에게 이야기를 꺼내자 고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은 한참이나 고민한 후 “엄마가 정말 보고 싶겠지만 좋아하시는 일이니까 전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가 남극 세종기지에 머무는 것으로 오해해서 생긴 에피소드지만, 연구원 엄마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아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고 했다.
극지연구소장을 연임하며 6년간 연구소를 이끈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연구소가 있는 인천 송도 출근한다. 이전에는 연구 책임자로 실질적인 연구를 담당했다면 지금은 연구원들의 연구 인프라를 지원하고 트렌드를 예측하는 시니어 연구원의 역할을 담당한다. 기관장을 지낸 경험과 노하우로 후배들의 연구 과제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현장 연구도 쉬지 않는다. 지난 1월에는 지구 최남단 마을인 칠레 남단 푸에르토 윌리암스를 찾아 남반구의 생태진화 연관 관계를 살폈다. 30년 넘게 연구를 해왔지만 그에게 극지 연구는 여전히 매력적인 모양이었다. 최근 기후변화가 최대의 국제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극지 연구의 중요성은 날로 더해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극지 연구 지원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 연구위원도 이 부분에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계세요. ‘인천 앞바다도 모르는데 왜 극지 연구를 하느냐’고요. 지원 정책을 펴 나갈 때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지만, 기초과학 분야에선 당장의 성과가 나오긴 힘들잖아요. 하지만 반드시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죠. 경제 규모 세계 10위에 오른 국가 위상을 생각한다면 그에 걸맞게 전 지구를 위한 일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봐요. 극지 연구는 기후변화를 파악하는 기본이자 중요한 분야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여권신장, 빈곤퇴치만큼이나 과학이나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그것이 결국 세계를 위한 일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잖아요.”
실제로 극지연구소에선 이상기후가 북극진동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 극지방의 변화가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여성으로서 과학 분야 여성 인력의 고위직 진출에도 관심이 많다. 극지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원 중 여성은 20% 정도다. 과학계 전반에서 여성 연구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고위직에 오르는 경우는 소수다. 이 연구위원은 여성 후배들에게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도전하는 것에 머뭇거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분야가 험하고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더라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과감히 버리고 몸소 부딪히며 도전했으면 합니다. 그 미래는 반드시 성공적인 모습이 될 것 이라고 확신합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극지연구소를 나서며 그에게 연구소가 인천의 가장 끝에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에게서 “송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끝일 수도, 시작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들에게는 ‘세상의 끝’ ‘대륙의 마지막’으로 보이는 남극과 북극도 뒤집어보면 사실은 ‘세상의 시작’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