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의 기막힌 선택적 정의

남을 향해선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던 진보의 도덕성이 정작 제 살을 벨 때는 어김없이 무뎌지는 법인가 보다. 국가의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겠다는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행적이 드러날수록, 이들이 그토록 소리 높여 외쳐온 ‘가치’의 민낯이 씁쓸한 자화상처럼 드러나고 있다.
2018년 노동당 내 이른바 ‘언더조직’에서 벌어진 성차별과 위계 폭력에 대한 사과문 작성을 격렬히 가로막았던 장본인이 바로 용혜인 후보자였다는 사실은 가히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비동의간음죄 입법을 주장하고, 상대 진영을 향해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라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맹신에 가깝게 설파하던 투사는 어디로 가고, 과거의 용혜인은 “사실관계를 단정하기 어렵다”, “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며 지극히 신중하고 보수적인 법리주의자의 탈을 썼다.
참으로 편리한 이중잣대다. 타인의 허물에는 의혹 제기만으로도 광장 한복판에 세워 인민재판을 서슴지 않던 이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당계(SP)’라는 좁쌀만 한 정파적 이익과 조직 방어를 앞두고는 돌연 무죄추정의 원칙을 사수하는 호법신으로 변신한다. 당내 사과문 채택을 ‘계파 찍어내기’라며 음모론으로 치부하던 그 논리는, 진영논리의 늪에 빠진 기성 정치권의 구태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혼전 순결과 낙태 금지라는 반시대적 규율을 강요하고 성폭행 피해자를 조직에서 배제했다는 참담한 폭로 앞에서도, 후보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고통받는 피해자의 절규가 아니라 내 파벌의 생존이었던 셈이다. 당원이 “노동당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버렸느냐”고 절규하던 그 회의장에서, 용 후보자는 이미 자신이 표방하던 가치를 조직의 이권과 맞바꿨다.
자신과 내 편의 과오는 ‘철저한 진상조사 뒤’로 한없이 유예하면서, 남에게는 즉각적인 참회와 단죄를 요구하는 모순. 정작 의혹의 진실을 묻는 취재진 앞에서는 굳게 입을 닫아버린 채 출근하는 장관 후보자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외쳐온 ‘성평등’과 ‘약자 보호’는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철학이었는가, 아니면 권력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한 위선적인 깃발에 불과했는가.
자신의 과거조차 성찰하지 못하고 제 조직의 성폭력 카르텔 하나 털어내지 못한 인물이 전국의 성평등 정책을 지휘하겠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과 진정한 피해자들에 대한 명백한 조롱이다.